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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등급, 밝기, 온도, 색상 2007/04/12 11:45

<별의 밝기>

1. 실시등급(apparent magnitude)

하늘의 별들은 금방 눈에 들어오는 밝은 별에서부터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희미한 별까지 밝기가 매우 다양하다. 예전부터 별을 관찰해 온 사람들에게는 이 별의 밝기와 별의 색깔이 어떤 별을 특정 지워주는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별들의 밝기에 많은 관심을 가져 왔다.

처음으로 별의 밝기를 정량적으로 다루었던 사람은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히파르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였다. 그들은 별의 밝기를 6등급으로 나누고 가장 밝은 별을 1등성이라고 했으며 가장 희미하게 보이 는 별을 6등성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하늘에 보이는 별들이 최하 6등성이다. 6등성보다 더 어두운 별들은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망원경을 이용해야 관찰할 수 있다.

1850년 영국의 천문학자 포그슨(N.R. Pogson)은 망원경을 이용하여 알렉산드리아 시대부터 1등성이라고 구별되던 별과 6등성이라고 구별되던 별의 밝기 차이가 100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5등급의 차이가 100배의 밝기를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는 한 등급의 밝기 차이는 약 2.512배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1등성은 2등성보다 약 2.5배 더 밝고, 2등성은 3등성보다 약 2.5배 더 밝다.

한편, 한국에서도 1770년(영조 46)에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인 《동국문헌비고》 <상위고(象緯考)> 편에 항성의 등급에 따른 별의 밝기를 크기로 표현해 놓았는데, “1등성은 2등성의 2.43배, 2등성은 3등성의 2.55배, …, 5등성은 6등성의 1.33배”라고 되어 있어, 허셜의 연구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이는 허셜의 연구보다 50년 이상 앞선 것으로, 조선 천문학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1등성에서 6등성까지만 구분했지만 맨눈으로는 관측이 불가능했던 별들이 망원경의 도움으로 관측이 가능해지자 별의 밝기는 이에 맞추어 높은 숫자를 가지게 되었다. 망원경으로 관측이 가능한 별 중에서 23.5등성도 있다. 또한 태양이나 보름달과 같이 1등성보다 밝은 별도 이 스케일에 의해 계산하면 음의 등급을 갖게 되는데 태양은 -26.7등성, 보름달은 -11등성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러한 겉보기 밝기는 실제 별의 밝기가 아니다. 따라서 별의 실제 밝기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별을 같은 거리에 가져다 놓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절대등급(absolute magnitude )

인간은 별을 마음대로 옮겨 놓을 수 있을 만큼 전능 하지는 않지만, 같은 거리에 옮겨 놓았을 때 얼마나 밝게 보일까를 계산할 수 있는 지혜는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거리가 알려진 별을 32.6광년(10파섹)의 거리에 옮겨 놓았을 때 얼마나 밝게 보일까를 계산하여 그 결과를 등급으로 표시하고 이것을 절대등급이라고 하기로 하였다. 이에 대하여 별들의 겉보기 밝기를 실시등급이라고 한다.

실시등급이 -26.7인 태양은 절대등급이 4.8로 어두운 별에 속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별들도 실제로는 매우 먼 거리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먼 거리에 있는 별들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 별들에 대한 이런 사실은 별에서 오는 스펙트럼을 분석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최근에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적외선, 자외선, X선, 전파와 같은 빛도 천체 관측에 사용되고 있다. 전자기파 중에서 우리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가지광선은 아주 좁은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가시광선만으로는 제한된 정보만 얻을 수 있다. 가지광선이 아닌 이러한 여러 가지 전자기파를 이용함으로써 우리는 우주에 대해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가시광선이 아닌 전자기파를 이용하여 본 우주의 모습은 눈으로 보는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과 다르다고 해서 실망하고 돌아서서는 안 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우주의 참모습인지 아닌지 X선으로 본 우주의 모습이 참모습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가시광선이 아닌 전자기파도 또 다른 형태의 빛이다.

<별의 색과 온도>

1. 물체의 온도와 색

색     깔

표면 온도

별의 예

푸 른 색

50000℃

라센타 10번 별

청 백 색

25000℃

리겔스피카

흰     색

10000℃

시리우스

황 백 색

7000℃

프로시마

노 란 색

6000℃

태양

주 황 색

5000℃

아크투루스

붉 은 색

3500℃

베텔쥬스

대장간에서 쇠를 달굴 때, 쇠가 달구어짐에 따라 점차로 붉어지다가 나중에는 주황색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전기 난로의 니크롬선은 처음에는 검붉은 색을 띠다가 나중에는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을 볼수 있다. 이와 같이, 모든 물체가 나타내는 색깔은 물체와 온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밤하늘의 별들도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 등의 여러 가지 색깔을 띠고 있다. 예를 들어, 베텔쥬스나 리겔은 같은 오리온자리에 있는 별이라도, 베텔쥬스는 붉게 보이는데 반해 리겔은 청백색이다. 또, 베가나 데네브는 모두 흰색이다. 이러한 별의 색깔은 별의 표면온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푸른색의 별이 가장 온도가 높다

2. 별의 색과 표면 온도

별의 색이 푸른 빛이 날수록 그 별의 표면 온도가 높고, 붉은 빛이 날수록 표면 온도가 낮다. 푸른색 별은 표면 온도가 5만℃, 청백색 별은 2만 5천℃, 흰색 별은 1만℃, 황백색 별은 7천℃, 노란색 별은 6천℃, 주황색 별은 5천℃, 그리고 붉은 색 별은 3천5백℃ 이다. 청백색으로 보이는 시피카의 표면 온도는 약 1만8천℃이다. 시리우스나 베가와 같은 흰색별은 1만℃정도, 아크투루스나 태양과 같이 노란색 별의 표면 온도는 5천~6천℃ 이다. 북극성은 황백색으로 7천℃이고, 불그스레한 안타레스의 표면 온도는 3천5백℃ 정도이다. 이처럼 별은 표면 온도가 낮아질수록 푸른색에서 흰색, 노란색, 붉은색의 순으로 변한다.

<별의 크기>

별은 태양이나 달과는 달리, 매우 멀리 있기 때문에 망원경으로 보아도 점으로만 보여서 그 크기를 직접 잴 수 없다. 그래서 별의 표면 온도가 밝기등을 조사하여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 크기를 추측하고 있다. 같은 밝기를 가진 물체가 있을 때, 면적이 큰 쪽이 면적이 작은 쪽보다 밝게 보인다.따라서, 밝게 보이지만 표면 온도가 낮은 별은 크기가 큰 편에 속하게 되는것이다. 별의 절대 등급과 표면 온도를 알면 그 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별의 크기는 매우 다양한데, 어떤 별의 크기를 말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태양의 크기와 비교하여 말하면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별의 지름이 태양의 몇 배라는 식으로 별의 크기를 비교한다.

1. 거성

태양보다 큰 별을 거성이라고하는데 거성은 태양보다 10배 가량 크고 초거성은 태양의 100배이상 크다. 초거성으로 알려진 전갈자리의 안타레스는 태양보다 약 240백나 더 크다.

2. 왜성

태양보다 훨씬 작은 별을 왜성이라고 하는데, 갈색 왜성과 백색왜성, 중성자 별이 있다.

갈색 왜성은 지름이 태양의 10분의 1이하이고, 표면 온도도 낮기 때문에 불그스레한 약한 빛을 내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백색 왜성은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가진 별의 마지막 단계에 생기는 천체이다. 크기는 대략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비슷하다.

중성자 별은 백색 왜성보다 훨씬 더 작은데, 반지름이 10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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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파르코스 [ Hipparchos , BC 160?~BC 125? ]

천체의 조직적 관측과 그 운동의 수학적 처리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 니케아에서 출생하여 로도스섬[]에서 활동하였다. 저서는 남아 있지 않으나 그의 연구업적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 《알마게스트》에 수록되어 후세 천문학의 기초를 구축하였다. 4계절의 길이가 똑같지 않은 것에서 착안하여 태양의 궤도를 이심원()으로 계산하였고, 마찬가지로 달의 이심원을 정하여 태양과 달의 운행표를 만들어 일식과 월식을 예보하였다.

신성()과 혜성()을 관측하였고, 1,080개의 항성에 대하여 그 밝기를 6등급으로 분류하여 항성목록() 작성을 시도하였고, 그것을 150년 전의 티모카리스성표()와 비교하여 항성들의 황위()는 같지만 황경()이 약 2°씩 증가된 것을 발견하였다. 여기서 춘분점()이 황도() 위를 매년 48″씩 역행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춘분점의 세차()라고 불렀다. 천체운동에 관한 계산의 기초로서 삼각법을 고안하였고 사인함수표[]를 제작하였다.

황도(ecliptic )

태양의 궤도면은 평면이 아니지만, 평면이라 보고 그 평균궤도면을 황도면()이라고 한다. 이것은 적도면과 23° 27'쯤 기울어 있고, 황도상의 적도를 가로지르는 두 점이 춘분점과 추분점이다. 황도를 기준으로 하는 좌표계를 황도좌표계하며, 행성의 위치를 나타내는 데 편리하다. 행성궤도면이 황도면과 이루는 각을 황도경사()라고 한다. 황도는 근소하지만 다른 행성으로부터의 영향으로 조금씩 변한다. 달의 궤도면인 백도면()과는 5° 9' 기울어 있다.

황위(celestial latitude)

0°에서 90°까지 측정하며,
황도면 북쪽의 천체에 대해서는 +, 남쪽의 천체
에 대해서는 -기호를 붙인다. 황도를 기준으로 하여 천체의 위치를 나타낼 때, 황경()과 함께 사용한다. 태양 ·달 ·행성의 황위는 모두 작다.

황경(celestial longitude)

황도()좌표계의 북(남)극과 어떤 천체를 지나는 대원()이 황도와 교차하는 점으로부터 춘분점까지의 각거리().

ㅡ> 황씨 삼형제는 다음에 더 자세히..^^;;

2.프톨레마이오스 [ Ptolemaeos, Klaudios , 85?~165? ]

 영어명은 Ptolemy(톨레미). 127∼145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천체()를 관측하면서, 대기에 의한 빛의 굴절작용을 발견하고, 달의 운동이 비등속운동임을 발견하였다. 천문학 지식을 모은 저서 《천문학 집대성 Megal Syntaxis ts Astoronomias》은 아랍어역본()인 《알마게스트 Almagest》로서 더 유명한데, 코페르니쿠스 이전 시대의 최고의 천문학서로 인정되고 있다.

이 저서에서 BC 2세기 중엽 그리스의 천문학자 히파르코스의 학설을 이어받아 천동설()에 의한 천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기술()하였다. 천체가 비교적 간단한 기하학적 모델에 의거하여 움직인다고 가정하고, 히파르코스의 사인표[]를 사용하여 해 ·달 ·행성의 위치를 계산했으며, 그에 따른 일식 ·월식 현상을 예보하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류()의 천동설과는 달리 완전한 수리천문서()로서 가치가 있다. 유럽에서는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알마게스트》를 이해할 수 있는 천문학자가 나타났으며, 천문학의 수준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로 되돌아가, 그 기초 위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탄생될 수 있었다.

그 밖에 점성술책인 《테트라비블로스() Tetrabiblos》가 아랍 세계에서 인기를 얻었고, 지리학의 명저 《지리학 Geographike Hyphegesis》도 지리학계에서 오랫동안 아낌을 받았다. 그 밖에도 광학()과 음악에 관한 여러 저서가 있다.


3. 포그슨 공식

1856년 래드클리프천문대의 N.R.포그슨은 별의 등급(m)과 별빛의 영향력이 완전히 없어지는 구경의 크기(a)는 m=5 log a+9.2와 같은 관계식을 가지고 있음을 처음으로 유도하였다.

이 때 별빛의 밝기(I)는 구경의 크기의 제곱(a2)에 비례하고 별빛이 어두울수록 등급은 커지기 때문에, 별의 등급과 밝기는 m=-2.5 log I+C(상수)와 같은 관계식을 갖는다. 이 관계식을 포그슨의 공식이라고 한다.


4. 허셜 [ Herschel, Friedrich William , 1738.11.5~1822.8.25 ]

독일 하노버 출생.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나 7년전쟁에 종군하였다가 탈주하여 영국으로 건너갔다. 1766년 런던 교외의 작은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있으면서, 천문서적을 탐독하여 천문학에 관한 실력을 쌓았다. 그 후 자신이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관측에 열중하여, 마침내 항성천문학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주요업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대형 망원경의 제작 : 1774년 초점거리 168cm의 반사망원경을 제작하였고, 이듬해에는 초점거리 213cm(지름 16.5cm), 1789년에는 초점거리 1,219cm(지름 122cm)의 거대한 망원경을 완성하였다. 구조는 개량 뉴턴식의 것으로, 이른바 허셜식 망원경이었다.

② 천왕성의 발견
: 1781년 초점거리 213cm 망원경으로 황도()를 관찰하던 중에 혜성과 비슷한 밝은 천체를 발견하였다. 궤도계산 결과 그것은 새로운 행성으로 판명되었고, 천왕성이라고 명명됨으로써 당시 알고 있던 태양계의 범위를 두 배로 넓혔다.

③ 쌍성의 발견과 《쌍성목록》의 편집
: 연주시차()를 검출할 목적으로 갈릴레이가 언급한 쌍성을 조직적으로 관측하여, 1782년과 1784년에 800여 개의 《쌍성목록》을 작성하였고, 1802년 쌍성 중에서 케플러운동을 하는 것들을 확인하였다.

④ 항성계수()와 은하계의 발견
: 1783년 천구상에서 항성의 분포상태를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통계적으로 밝은 별은 가까운 별이고 어두운 별은 먼 별임을 생각하고, 별들이 원반 모양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하여 은하계의 구조에 대한 기초를 수립하였다.

⑤ 《성운 ·성단목록》의 작성 : 전체 하늘을 조직적으로 관측하여 1786년, 1789년, 1802년의 3회에 걸쳐 총 2,500개의 성운 ·성단의 목록을 작성하였다.

⑥ 태양계의 운동 입증 : 1783년 밝은 별 7개의 고유운동에 대한 통계를 내어 발산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우주공간에서 태양계 운동의 향점()이라고 해석하고, 지동설(태양중심설)의 우주관에 대하여 수정을 가하였다.

이러한 공적으로 1782년 왕실천문관() 겸 왕립학회 회원으로 천거되고, 1816년 작위()를 받았으며, 1822년 왕립천문학회 회장이 되었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생애

독일의 천문학자이며 수학자인 케플러는 뷔텐베르그 공령의 비일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4살 때에는 천연두를 앓았으며 병약과 빈곤 속에서 자랐었다. 그는 뛰어난 지성과 탁월한 집중력의 소유자이긴 했지만, 자신에 대한 비판만은 달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화를 잘 내는 성질을 가진 용병으로 몇 번 전쟁에 참가하여 싸웠고 어머니는 말참견하기를 좋아하고 남을 괴롭히는 부류의 여자로 가난한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갈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불우하게 자란 어린 케플러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Leonberg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 특히 라틴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었다.

그는 17세에 아버지가 전쟁으로 전사하자 다음 해에 Tubingen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한 후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의 답답한 신학에 싫증을 느끼고 M.Maestlin 교수로부터 소개받은 Copernicus의 지동설에 감동 받아 천문학으로 전향하였다.

1954년 그라츠 대학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강의하는 한편, 점성력의 편수를 위촉받아 일하면서, 그 해 겨울은 특히 추위가 심할 것이며, 곧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였는데, 그것이 적중하여 좋은 평판을 받았다. 1600년 그라츠를 사임하고 Prague로 옮겨 Ticho Brahe의 조수가 되었으며 Rudolph 2세의 보호를 받았다. 화성 운행에 관하여 계속 관측하였고 Brahe가 죽을 때 그가 16년 간에 걸쳐 정밀하게 관측 연구한 화성 관측의 자료를 인계 받아 거의 30 년간에 걸친 행성의 궤도에 관한 그의 기념비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그후 관찰 기록에 의한 우주 체계를 수립하는 중에
케플러 신성을 발견하였다.(1606년)

1609년 「인과적 토대로 굳힌 <새로운 천문학>,즉 Brahe의 관측에 입각한 '화성 운행의 연구로 밝혀진 천체물리학'이란 제명으로 제1법칙 궤도의 법칙 및 제2법칙 면적의 법칙을 발표하여 Copernicus의 지동설을 수정 발전시켰다. 이와 같은 운동의 원인으로서 태양의 자전에 따른 자기적인 추진력을 제안하였다. 1612년 Rudolph 2세가 죽자 궁정의 보호를 잃어 린츠의 수학교수겸 측량 감독으로 전임하였다.

1613년에 재혼 1618년에 그의 대저작 "The Harmony of the world"라는 저서를 통해 제 3법칙 주기의 법칙을 발표하였다. 1626년 종교 전재의 전란을 피하여 Ulm으로 이전하였고 다음해 제 3법칙에 따라서 행성의 위치 추정을 처음으로 log계산을 이용하여 밝혔으며,
이것을 루돌핀 목록(Rudolpine Tables)이라고 명기하여 당시의 원양 학자들에게 신뢰받는 지침이 되게 하였다.

그 후 유럽에서 반종교개혁이 발발하여 Ulm으로 옮기고 중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그의 재정적 후원자들에게 점성술을 읽어 주며 남은 여생을 보냈다. 그리고 "꿈「The Dream」"은 죽기 전에 완성되고 죽은 후에 출판되었는데 이 책은 "달에서 관찰한 천체의 운동을 통찰력이 풍부하게 묘사하여 Copernicus체계의 입장을 뛰어나게 논증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1930년 11월 노상에서 급사할 때까지 그는 병약과 빈곤, 전쟁 속을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연구를 계속한 근대 역학의 선구자였다.

1571년 뷔텐베르그 공령의 바일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남
1584년 Adelberg수도원에 들어감
1586년 마울브론에서 예비학교에 입학
1586년 Tubingen 대학교에서 천문학을 전공하기 시작. 지도 교수 M.Maestlin의 영향을 받아 Copenicus의 이론에 흥미를 갖게 됨
1591년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신학을 전공하기 시작함
1594년 그라츠에 위치한 루터파 학교에 수학 교사로 가게 됨. 부여된 강의와 개인지도 외의 시간에 점성술 달력을 만드는데 열중, 지상이변을 예언한 것들이 적중하여 상당한 명성을 얻었으며 수입원이 되었음

1597년 혹성에 관한 논문 발표로 티코 Brahe와 Galilei를 알게 됨
1597년 첫 번째 우주론에 대한 저서인 「The Mystery of the Universe」"우주의 신비를 출판
1599년 Ticho Brahe의 조수로 들어감
1601년 Ticho Brahe가 죽은 후 Brahe의 직책과 자료를 모두 물려받음
1618년 「The Harmony of the World」"세상의 조화"를 출판
1621년 「Epotome of theCopernican Astronome」"코페르니쿠스 천문학 개요"에서 자신의 기 여로 인한 우주론의 이론의 변화를 피력함
1627년 「Rudolphine Tables」"루돌핀 목록"를 작성하고 출판
1628년 발레슈타인 후작의 전속 점성술사가 되어 실레지아로 거처를 옮김
1630년 사망


과학적 업적

스승인 Brahe의 화성에 관한 정밀한 관찰을 포함한 유고를 정리하면서, 관측 수치에 입각한 통계적 계산을 하던중, 지금까지의 이론으로는 화성의 운동에 관하여 완전한 설명을 할 수 없었음을 발견, 종래의 이론과는 전혀 별개로 직접 공전궤도를 얻으려 노력하였다. 이는 당시의 실정으로는 극히 어려운 일이었으며 많은 곤란에 봉착했으나 드디어
화성의 공전궤도를 결정할 수 있었고, 그 타원 궤도 위를 다른 혹성들도 돌고 있음을 확인하여, 유명한 "케플러의 법칙"을 세우게 되었다.

Platon이래 천체의 궤도가 환전한 원이라는 것은 어떤 천문학자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철칙이었다. 케플러 역시 플라톤주의자로 완전한 원이란 사상이 그의 사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였지만, "임시 가설"을 통하여 계산하다 보니 Ticho의 정확한 측정자료는 8분의 오차가 나옴을 발견하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1605년 마침내 타원 궤도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발견에 대해 그는 화성궤도가 완전한 원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크게 기뻐하지는 않았다. (ㅋㅋ...유혹에 굴복하지 않다니..역시 훌륭한 과학자는 다르군.)

케플러의 법칙은 세 가지로 되어있는데, 제 1, 제 2법칙은 중력과 조수의 간만이 달의 인력에 의한 것이란 사실을 "새 천문학"에 발표하였고, 제 3 법칙은 "우주의 조화"에 발표하였다.

그밖에 광학을 연구하였고 망원경을 설계하였으며 광학을 통해서 빛을 내는 물체의 밝기가 그 물체에서 멀어질수록 거리의 제곱에 역비례하여 어두워진다는 법칙을 연구하였다. 또한 굴절을 조사하였는데 굴절각이 입사각에 비례한다는 프톨레미이오스의 근사적인 굴절법칙 단지 입사각이 작을 때만 성립한다는 사실도 증명하였다.


<케플러 법칙>

(1) 제 1 법칙 : 궤도의 법칙 (The Law of Obbits)

행성의 궤도는 태양을 초점으로 한 타원 궤도 운동을 한다. 타원궤도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은 관측자료에 의해 가설을 엄격하게 검증한 모범적인 예이다.

(2) 제 2 법칙 : 면적의 법칙 (The Law of Aeas)

제 1 법칙보다 먼저 발견된 것이지만, 속도 변화의 수학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태양과 행성을 연결하는 선은 행성이 궤도를 움직임에 따라 같은 넓이를 휩쓴다. 이 법칙은 행성의 운행속도의 불규칙성을 해결한 것이고 뉴튼의 각운동량 보존의 법칙과 동일하다.(아!)

(3) 제 3 법칙 : 주기의 법칙 (The Law of Periods)

이 법칙은 1618년에 발표된 것으로 제 1, 2법칙이 개개의 행성에 대한 것인데 비해 행성계 전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궤도 사이의 비를 문제로 삼고 잇다. 그 내용은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태양으로부터 거리의 3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고 이 법칙은 우주에 통일성을 주었다. 이렇게 케플러는 프톨레마이오스가 도입한 소원, 대원, 이심원, 대심등 거추장스러운 개념을 쓰지 않고도 간단한 수식으로 행성의 궤도 문제를 해결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그리이스 천문학자들은 별들이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것은 불합리하다 해서 투명한 수정구에 붙어도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Ticho에 의해 수정구가 깨어지고 나니 무엇이 행성을 궤도에 잡아 두느냐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케플러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우선 태양에서 나오는 신비스러운 힘 anima motrix가 행성들을 접선방향으로 밀어내고 그에 반대되는 힘 즉 인력이 균형을 이루어 행성을 궤도에 붙들어 두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뜻에서 케플러는 Copernicus체계를 물리학적으로 증명하려 하였고, William Gilbert의 자기적 힘을 받아들여 지구를 거대한 자석으로 보고 전 태양계에 확장하였으며 뉴튼이 생각한 중력과는 다르지만 질량과 크기에 따라 다른 자기적 힘을 가진 행성들과 태양사이에 인력이 작용한다고 생각하였다.


후대에 미친 영향

Platon이래 천문학의 목표가 "현상을 구하는"데 있었다면 케플러야 말로 그것을 실현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비록 그의 세 법칙이 행성끼리의 인력 때문에 정확하지 않고 뉴튼 법칙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도 않으나 근대 과학의 선구적인 사실로 만유인력 발견의 기초가 되었으며 현대과학의 초기 형태를 성립시켰고 경험적 연구에 있어서 계속적인 유용한 방법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우주론이 다루어야 할 영역의 광활함을 암시해 주었다. 또한 뛰어난 이론과 아이디어를 창안하였다.

출처 : blog.naver.com/cha_kan_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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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지용호
    2007/04/12 13:19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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