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가 매우 지저분하다.
겉으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화장실이며 사무실이며 매우 지저분합니다. 더구나 직원의 편의를 위해서 청소아주머니를 쓰는 회사는 직원들의 기본적인 에티켓이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화장실 휴지통은 휴지와 오물로 넘쳐납니다. 사무실에 휴지와 과자 봉지가 날아다녀도 누구하나 치우는 사람 찾기가 힘듭니다. 청소라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매우 중요한 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지저분하게 사용하는 직원들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떨어지는 직원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2. 메신저로 이야기하는 직원들이 늘어난다.
잘 되는 회사는 밝습니다. 회사 입구에 들어가면 직원들이 큰 소리로 인사합니다. 성격들도 밝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망해가는 회사는 그 반대입니다. 사무실 분위기가 초상집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커뮤니케이션은 회사 메신저를 통합니다. 면대면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보다 메신저 두드리는 소리만 더 많이 들립니다. 메신저로 업무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서로서로 열심히 헐뜯고 비난을 하는 메세지만 열심히 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쓰잘떼기 없는 잡담이거나...

사업과 취업을 거치면서 여러 회사를 다녀 본 제 경험상 위의 두 가지 지표는 꽤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사장님들은 직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회사 분위기는 어떤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대표 앞에서는 아부와 아양으로 무장한 직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두 가지를 지표로 삼고 회사를 유심히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벤처기업 직원 30명 2009/03/10 22:18

종종 술자리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일종의 벤처기업 캐즘(?)이야기 같은 것들.. 여러가지 미신도 있고, 속설도 있고, 캐즘도 있지만 벤처기업 하시는 분들이 가장 무서워 하신다는 것은 다름 아닌 직원의 숫자인 것 같다. 직원 30명. 직원 30명을 기점으로 회사가 더 성장하거나 아니면 망하거나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니까, 오너 입장에서는 직원 30명일 때가 가장 경영하기 힘든 시기라는 것이다. 오늘 새로 입사하신분들의 회식이 있었다. 그 분들까지 합하니 이제 우리 회사에서 일 하시는 분들이 26분 정도 된 것 같다.

임원도 아니고 회사의 주식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는 법적으로는 오너도 임원도 뭐도 아니다. 하지만 사원번호 4번으로 입사해서 변변한 사무실도 없을때 부터 우리 회사가 커 오는 것을 나는 봤다. 요즘은 결혼 준비와 건강 악화로 회사 생활을 느슨하게 하고 있지만, 정말 내 회사 처럼 열심히 일했다. 실력이 없어도 밤새워가며 열심히 했고, 잘 모르면 친구들 도움 받아가며 이것저것 만들었다. 물론 다른 직원 분들의 노고에 비하면 내가 일 한 것은 소꿉장난에 불과하다, 다른 분들은 책상에 약이 즐비하다. 아프면 쓰러지고 약 먹어가면서 그렇게 다들 열심히 회사를 키워 왔으니까. 그렇게 직원분들이 한 분 한 분 늘어. 이제는 어느덧 '마의 30명'이라고 불리는 나름의 고지까지 우리 회사가 왔다.

우연의 일치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우리 회사는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대표님 말마따나, 반대세력 한 명만 있어도, 누가 삽질 한 번만 해도 안 되는 중요한 기로. 모두가 열심히 퍼포먼스를 내야하고, 모두가 사소한 일 하나하나 꼼꼼하게 신경써서 해야한다. 잘 모르는 것은 서로 배려해가며 수용하고, 자기가 잘 아는 것은 적극 나서서 회사의 탄탄한 시스템을 만드는데 사용하면 더 무엇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몸이 안 좋아 회식자리를 박차고 나와 집으로 가는 전철안에서 글을 쓰고 있다. 글이 너무 두서 없지만, 이제 30명이 다 된 우리 회사의 지난 발자취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어 글을 쓴다. 회사를 키우는데 열심히 뛰어 다니신 대표님 이사님의 땀냄새가 좋다, 함께 잠 줄여가며 열심히 회사를 만들어 온 동료들의 열정이 뜨겁다.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우리의 갈길이 멀어서 더 즐겁다. 더 재미있는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린다 :D
재벌2세가 경영을 하면 기업이 쇠퇴한다?
아버지 (故)이병철의 삼성그룹을 물려받은 3남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가 평생 삼성에서 벌어온 매출의 두 배 이상을 단 1년의 순이익으로 달성해버린다. '신경영'선포 이후, 1992년에 2,300억원이던 순이익이 10년만인 2002년에는 15조원으로 66배 성장했다. 시가총액은 3조 6,000억원에서 75조원으로 급상승했다. 이익은 상장되어 있는 기업들을 다합한 것의 61%를 차지했다. 2002년 한국 경제 전체에서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23%다. 같은 기간 삼성의 브랜드가치는 108억 4,600만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반도체, 평면TV, 휴대폰 등 많은 제품군에서 세계1등 제품을 만들어냈다. 이 대단한 수치는 창업자가 만들어 낸 수치가 아니다. 재벌 2세 이건희 회장이 이루어 낸 리더쉽의 결과물이며 업적이다.

일본의 소니에게 복수하다, 소니를 무릎 꿇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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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니사는 절대로 다른 회사의 제휴제의를 받지 않기로 유명했다. 소니의 콧대는 대단히 높아서 한 번은 이런일이 있었다. 삼성측에서 제휴를 위해서 소니의 일본 본사를 찾아갔는데, 소니측에서는 삼성측 손님을 2시간이나 기다리게 만들었고, 비즈니스도 별 소득이 없었다.
하지만 이후 삼성은 눈부시게 성장했고, 나중에는 오히려 소니를 앞지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소니는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기업에 손을 내밀었고, 그 상대가 바로 삼성전자였다. 이 때, 소니 직원이 삼성전자 방문을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 삼성 역시 소니측 손님을 2시간 정도 기다리게 만들며 통쾌한 복수를 해줬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한 때, 삼성전자는 가전왕국인 일본의 전자회사 상위 10개를 합친 것 보다도 크다는 말을 들을만큼 소니에게는 무서운 존재였다.

안 되는거 붙잡고 있지말고, 처음부터 다시! 500억 어치 제품을 불싸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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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유럽 등 서구에서도 명품으로 인정받는 삼성의 애니콜이지만, 한 때 그 불량률이 40~50%를 육박할 정도로 품질에 말썽이 많았다. 반도체 이후, 삼성이 먹고 살 산업으로 휴대폰 산업을 생각하고 있던 이건희 회장은 이것을 그냥 두고 넘어갈리 없었다.
1995년 봄. 삼성전자의 제조공장이 있는 구미의 사업장에서는 2천명의 임직원이 운동장에 줄을 서 있고, 곧 비가 올 것 같은 우울한 분위기 아래, 휴대폰과 팩스 등 시가 500억원 어치의 제품들이 고객의 손에도 가보지 못하고 화형식을 당하고 만다.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메세지가 담긴 지시였다. 직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말도 하지 못했고, 이후, 삼성전자의 전자제품, 특히 휴대폰의 품질은 날이갈수록 상승해, 2002년도에는 1년 동안, 단일 제품으로는 700만대나 국내 판매를 소화하는 기염을 토해내게 된다. 하자가 있는 제품은 팔 수 없고, 제품에 혼과 문화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마인드가 고객들에게 그 대로 맞아떨어 진 것이다.

출퇴근 7.4제 혁신
출퇴근 7.4제란 오전 7시에 출근을 하여, 오후 4시에 퇴근을 하자는 이건희 회장의 제안이다. 이것은 회장의 직원들에 대한 배려와, 기업이 조금이라도 사회적 배려를 해야한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직원들은 오전 일찍 출근해서 남들보다 몇 시간 빨리 퇴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하면 꽤 많은 문화생활이나 자기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회장의 생각이였다. 그리고 삼성 식구가 10만명이 넘게 되었는데, 이 숫자라도 한 두시간 빨리 출근하고, 한 두시간 늦게 퇴근하면, 조금이나마 출퇴근 교통지옥을 풀어줄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용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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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사람도 돌아오면 과감히 다시 일 할 기회를 준다.
'믿지 못하면 쓰지말고, 일단 썼으면 무조건 믿어라.' 이건희 회장의 용인술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철학이며, 널리 알려져 있는 말이다. 과거 윤종용 부회장이 삼성을 등지고 현대로 떠난 적 있다. 이후, VCR 사업을 밀고 나가야 할 때, 꼭 필요한 사람은 윤종용 상무라며 다시 삼성으로 데리고 와서 VCR 사업에 관한 모든 책임을 주었다. 이후 윤 부회장의 노력으로 적자에 허덕이던 VCR부문의 사업궤도가 정상을 되찾았고, IMF 라는 국가 위기가 도래했을 때는, 윤 부회장의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수 많은 기업 중 삼성이 별 탈 없이 건재할 수 있었다. 이건희 회장의 용병술이 빛을 발한 것이다.
남궁석 상무는 자신의 경영 실적이 악화되자, 너무나 힘들어했다. 그래서 남궁 상무는 당시 이건희 부회장을 찾아가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말했다. 가서 뭐 할거냐는 이건희 회장의 질문에, 영어 공부하고 오겠다는 말을 했고, 이건희 회장은 '사람 공부 많이 하고 오라'는 말로 남궁상무를 유학길로 보냈다. 2년여의 유학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남궁상무에게 이건희 회장은 의료기기 사업 파트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지만, 남궁상무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현대전자로 자리를 옮기고 만다. 어지간한 그릇이 아니라면, 보통 CEO들은 남궁상무를 다시는 만나지 않았겠지만, 이건희 회장은 삼성 SDS 사장을 해달라고 남궁석 상무를 다시 호출한다. 남궁석 상무에게 같이 일해보자고 찾아간 자리에서 이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위에 있던 사람이 떠나가면, 아래있던 사람들은 자연히 그 사람을 펌하하고 뒤에서 욕을 하게 마련인데, 남궁석 상무가 자리를 비웠던 5년 동안 그 누구도 남궁 상무를 욕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한 현대에서 들려오는 잡음도 없었다. 같이 일해보자."

'다재다능'하고 '박학다식'한 지성인이며,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사람
이건희 회장은 일본에서도 도쿄대, 게이오대와 함께 초일류명문대학 중 하나인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 출신이다. 학교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지만, 당시 이 정도의 학교에 입학할 정도라면 대단한 지성인임에 틀림이 없다. 그는 사물에 호기심이 많고, 많은 지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그가 30대에 故이병철 회장도 반대한 반도체 사업을 추진할 때 했던 말이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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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젓가락 문화권이어서 손재주가 좋고, 주거 생활 자체가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등 청결을 중시한다. 이런 문화는 반도체 생산에 아주 적합하다. 미세한 작업이 요구되고 먼지 하나라도 있으면 안되는, 고도의 청정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공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사실 일본과 큰 차이가 없지만 내가 착안한 것은 식생활 문화였다. 우리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숟가락을 사용한다. 찌개와 탕을 먹기위해서다. 밥상 한 가운데 찌개나 탕을 놓고 공동으로 식사한다. 그것은 결국 팀워크가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점에서 일본과 비교해 우리에게 강점이 있다고 보았다."
         
- 이건희 에세이 中

이미 반도체 1위 국이 된 지금이야 별거 아닌 말일지 몰라도, 당시로서는 대단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그는 회의스타일도 특이했다. 회의 중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회의가 끝날 즈음에 자신이 정리했던 것을 줄줄이 지적하여 회의 참석자들을 곤란에 빠뜨린다. 그리고 그는 오랜 기간 엔지니어로서도 활동을 했다. 실제로 그의 자택 지하에는 개인 집무실이 있는데, 다른것이 아니라, 온갖 가전제품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는 그 만의 연구실이다. 실제로 거기에서 삼성 제품들의 많은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이회장은 음악광이여서, 소리에 매우 민감했다. 삼성의 질 좋은 사운드 기기는 이회장의 높은 안목덕분에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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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즈스퀘어

한국경제의 1/4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 거대한 기업집단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하기는 싫다. 그저 난 다른 것 다 떠나서 리더로서의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과 리더쉽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능력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본받고 싶다. 한국에는 이런 기업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삼성이 세계시장에서 더욱더 그 이름에 빛을 냈으면 좋겠다. 더불어 한국의 위상도 더 올라가길 바라며..

수렵, 농경생활 이래 인류의 삶은 항상 그 관계가 종속적이게 마련이여서, 대지주는 소작농을 부려먹으면서 배에 기름을 채웠고, 애덤스미스 이래 경제학이 자리잡히기 시작한 근대 유럽에서는 공장주가 15세의 어린이들을 하루 20시간씩 고된 노동을 시켜가며 착취, 자기들만의 사리사욕을 채워나갔습니다.

이런 미성숙한 자본주의의 터널을 지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들을 고쳐가기 위해 하나씩 노력해 온 결과. 적어도 '성숙해져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본주의는 발달했고 꽃을 피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주들은 자신이 고용한 사람을 '종업원'이라 칭하며, 그들을 돈을 주고 구입한 '인간 기계 설비' 정도로만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한 건 사실입니다. 단지 연봉을 많이 준다고해서 직원들이 행복한 기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직원들이 회사를 집처럼 편안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파티션 나누고, 고용된 사람 한 명이 내야하는 실적이 얼마이며, 야근을 해서라도 일을 마무리하라고 강요하던 시절이 아닙니다. 직원들은 모두 언제든 더 좋은 환경에서 일 할 수 있으면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으며, 기업들은 그런 인재를 잡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혜택을 제공해야 되게 된 것이죠. 고정관념이 있는 어른들께서 보신다면, '회사에 당구장이 있고, 회사 냉장고에 맥주가 있다면 일이 제대로 되겠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일의 능률에 있어서는 별 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일을 더 잘하게 되었다랄까요?

최근 구글발 기업문화는 태평양을 건너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한 편 부러움을 샀으며, 국내에서도 벤처기업과, 지식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일부 기업들을 시작으로 우리도 '기업문화를 바꾸어보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다른 회사에서 1년 이상 근무해보지 않고 다른 회사의 기업문화를 운운하기엔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제가 몸담고 있는 (주)블로그칵테일의 기업문화를 중심으로 재미있는 기업문화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구글이나 국내에 다른 큰 인터넷 회사들에 비하면 '아직은...' 이지만, 전통적인 제조업에 속해 있는 기업 등 다른 보수적인 기업들의 문화도 조금씩 바뀌길 기대하며 저희 회사의 재미있는 문화를 몇 가지 소개할까 합니다.

테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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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칵테일 테마데이

매월 1회, 테마데이라는 날이 있습니다. 이 날은 하룻동안 모든 업무를 중지하고, 소풍을 가거나, 영화를 보는 등의 여가생활을 하는 날입니다. 한적한 경기도 교외로 소풍을 가서 고기를 굽고 게임을 하며 놀기도 하고, 서울 도심의 공원으로 김밥싸들고 가서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자고 오기도합니다. 영화를 보는 날에는 기분이 묘합니다. 평일이라서 극장에는 사람도 없는데, 텅~ 빈 극장에 모든 직원들이 나와서 영화를 보는 그 기분 말이죠~ 은근히 좋아요.

레크리에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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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칵테일 당구장

아직 작은 회사라서 없는 살림이지만, 직원들의 휴식을 위해서 싸장님이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 부분중 하나입니다. 일을 하다가 사무실에서 자전거나, 스케이트보드, 에스보드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머리를 식힙니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당구게임이 한창입니다. 최근엔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다양한 보드게임도 블로그칵테일의 뺴놓을 수 없는 놀이문화 중 하나입니다. 엔터테인먼트 방 한 쪽에 있는 Wii는 한 번씩 있는 권투시합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블로그칵테일 사무실의 주요 교통 수단은, 보드와 자전거 입니다~

복장과 호칭
복장은 이미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벤처기업들이 제일 먼저 규제를 풀었던 부분 중 하나라서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나체로만 출근하지 않으면 어떤 복장이라도 상관없습니다. 호칭은 팀장님, 부사장님.. 이라는 호칭 대신 닉네임을 사용합니다. 직급은 존재하지만 호칭에 있어서는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똑같이 닉네임+'님' 을 사용합니다. 홍커피님, 여름날님, 박군님, 쌈바이님.. 이런씩입니다.

전 직원 블로거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기업이라면, 간부도, 사원도 자신의 블로그를 공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 사원이 자발적인 블로거이고, 이를 통해서 회사밖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좋은 친구로 거듭날 수 있는 중요한 촉매제가 되고 있습니다.

업무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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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션 없는 회사

블로그칵테일도 회사이기 때문에, 위아래 관계가 있고, 위에서 아래로 업무가 하달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이 모두에게 공유되고 이는 바로 회의를 거치며 그 의견이 적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모든 책상에 파티션이 없습니다.

인트라넷 짤방문화
이게 자랑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전부터 사내 인트라넷에 '짤방문화'가 생겼습니다. 일에 지친 우리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무서운 사장님이셨다면, 버럭! 하셨겠지만, 사장님도 함께 동참하여 짤방 문화를 빛내주고 있습니다.

월급봉투에 사장님의 편지가...
매월 월급 봉투에는 사장님의 정성어린 편지가 한 통씩 들어가 있습니다. 격려차원의 편지입니다. 사장님은 편지를 좋아합니다. 명절에는 직원들을 위한 선물을 가득 쌓아놓고, 개개인에게 전달할 편지를 쓰시느라 곯아 떨어져 계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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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칵테일 사람들과 냉장고에 가득한 맥주


노는 것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우리 회사 사람들이지만, 일 역시 잘 합니다. 항상 밝은 분위기의 회사와 일을 할 때 몰입하는 그 집념, 그리고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의 다부진 실력들을 가진 우리회사분들을 사랑합니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는 좋은 기업문화이지만, 가야할 길은 험난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이 福을 잘 지켜나가요~

그럼 다른 회사들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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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코리아의 카페테리아

인터넷 손품을 팔아서, 가 본 적도 없는 회사들의 너무나 재미난, 직원 편의 시설이나 기업문화를 알아봤습니다. 수영장이 있고, 당구를 치며, 수 천평의 사무실 어디에서도 무선랜이 연결되어 있으며, 세계 각국의 요리사가 맛있는 요리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구글 본사. 그런 구글 답게 구글 코리아도 본사의 기업문화를 가져 오려고 다분히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땅이 넓은 나라도 아니고, 아직까지는 구글코리아의 사업모델이 구글 본사처럼 확실하게 마련된 것이 아니라서, 구글 본사에 견줄만 한 시설은 아니지만, 많은 벤처기업을 탐방할 일이 있는 분들 몇 몇 분의 말의 의하면, 그래도 한국 벤처중에서는 '구글 시설이 제일 낫더라'하시는 말씀을 종종 듣습니다. 구글 코리아에는 고용된 요리사가 있으며, 식사는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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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NHN의 카페테리아

'직원들의 먹는 것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맛있는 차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벤처기업들의 카페테리아 문화의 확산에 있어서 국내대표 기업인 '다음'과 'NHN'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NHN과 다음 역시 본사에 카페테리아가 있어서, 여기서 손님을 맞이할 수도 있고, 앉아서 차를 한 잔 하면서 머리를 식힐 수 있습니다. 다음은 로고의 색상과 잘 어울리는 우드로, NHN은 딱 떠오르는 그린필로 카페테리아가 예쁘게 꾸며져 있습니다.
NHN의 사원복지 시설 중에서 한 동안 이슈를 만들어 냈던 곳 중 '양호실'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양호실로 뛰어가는 분들이 많다는 군요. 그 이유는 양호선생님이 이쁘셔서?
구글에 견줄만한 국내 사업장을 꼽으라면 단연 다음커뮤니케이션의 GMC를 꼽고 싶습니다. 다음의 제주도 사무실인 이 곳은 '글로벌 미디어 센터'(GMC)라고 불리는 곳으로 일단 휴양지의 펜션처럼 건물전체가 우드로 되어있고, 공기좋은 제주의 잔디밭과 함께합니다. '세상을 즐겁게 바꾸자'라는 모토를 달고 있는 GMC의 근무환경은 가히 한국의 구글 본사를 꿈꾸고 있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탁구장, 농구장은 물론이고, 넓은 경치를 구경하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헬스장 등 멋진 시설이 많이 구비되어 있어서, 누구나 한 번쯤 다음의 GMC에서 일하고 싶다는 유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사무실에 스파가 있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국내 최고의 PR업체 '프레인'에 있습니다. 요전에 직원분께서 블로그에 관련글을 쓰셔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기도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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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커뮤니케이션즈의 헬스장과 프레인의 스파시설


글을 마치며..
저의 작은 바램이 있다면, 큰 회사이든, 작은 회사이든, 모든 사장님 및 임원들의 태도가 많이 변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 포스팅에서 나온 것 처럼, 돈이 들거나, 화려한 것들이 아니라도 됩니다.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 살을 맞대고, 함께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인 만큼, '고용인'이라는 생각 보다는 '동반자'라는 시각으로 부하직원을 대해주세요. 출근하기 싫은 회사, 일하기 싫은 회사 보다는 일 하고 싶은 회사, 집 처럼 편안한 회사가 좋지 않겠어요? 당연히 이는 일의 능률을 더 올려주겠죠. 이것은 사장님의 태도 하나,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 하나가 직원들에게 전달 됐을 때 진정으로 빛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이긴, 자본주의의 꽃 '인센티브'도 잊을 수 없겠죠.

본문에 인용된 사진출처
http://blog2.blogcocktail.com
http://itviewpoint.com/tt/index.php?pl=3004
http://but13.com/20
http://ori39.tistory.com/
http://ceo.blogcocktail.com
http://www.eastasia.co.kr/247
http://blog.daum.net/2dayer/368846

삼성서울병원에서 왠 우편물이?
수술을 한 지는 3개월이나 지났는데, 그리고 주치의 선생님의 수술 후 관리도 끝났고, 건강하게 잘 살으라고 안부인사를 한지도 2개월이나 지났는데, 삼성서울병원에서 왠 우편물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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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편물을 열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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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수술이 끝나고, 삼성서울병원 홈페이지에 의사선생님에게 감사의 글을 남긴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 대한 피드백으로 이런 편지가 배달 된 것입니다.
보내 주신 감사의 글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특히 칭찬해 주신 해당부서 및 담당자에 대해서는 귀하의 뜻을 전달하고 격려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더욱 더 친절한 병원, 국민보건향상에 기여하는 병원이 되고,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병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오 감동받았습니다.
정말로 고마워서 홈페이지에 올린 의사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인사가 이렇게 피드백이 되서 돌아오고 또한 그 의사선생님께도 메세지가 전해지고, 병원측에서 격려하였다니. 이것이야 말로 선순환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시 삼성이라는 찬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대한민국에 살면서 많은 서비스를 받아보았지만, 삼성병원에 있는 동안 그렇게 전직원이 친절한 곳은 처음봤습니다. 그래서 삼성병원은 직원교육을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해 했었습니다. 헌데, 그것뿐 아니라 이렇게 작은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신경 써 주니, 그 병원에 왜 그렇게 사람들이 넘쳐나는지 이유를 알겠더군요.

친절한 동네 안경가게
쏭군은 시력이 좋습니다. 양쪽 시력 2.0입니다. 최근에는 한쪽눈이 시력이 떨어져서 1.5에서 2.0을 왔다갔다 합니다. 그래도 다른 분들에 비해서 확실히 눈이 좋은편입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이용할 일 없는 업종이 안경가게 입니다. 언젠가 패션용으로 쓰려고 안경 몇 개를 동네 안경점에서 구입한 적 있습니다. 그 가게에서 5년째 제 생일때마다 생일축하 편지와 사탕이 옵니다. 비싼 안 경도 아니였습니다. 저는 이 가게의 성실함에 감동받아서, 안경 산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가게로 주변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가기 싫은 집앞의 훼미리마트
집앞에는 훼미리마트와 일반가게 이렇게 두 군데의 소매점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반가게는 밤 11시쯤 되면 문을 닫으니, 밤늦게 잠을 자지 못하는 저로서는 집앞에 훼미리마트가 존재한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훼미리마트에는 발길을 끊게되었고, 가게 문을 닫기전에 미리 일반 가게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다놓습니다.
제가 훼미리마트에 가지 않는 이유는 정말 단순합니다. 나이도 지긋하신 아르바이트 형님께서 인사성이 없습니다. 들어올 때, 나갈 때 절대로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뭐가 그리 기분나쁜일이 있는지, 매일 편의점에 들를 때 마다 안 좋은 표정으로 인상을 찌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잔돈은 거의 던지다시피 거슬러 줍니다. 다른 이유 없습니다. 무슨 편의점에서 대단한 서비스를 바라는 것도 아니지요. 이런 작은 것 때문에 가게 매출이 좌지우지, 나아가서는 존립이 좌지우지 되는 것입니다.

1년 만에 두 배로 규모가 커진 감자탕집
지방에 있을때는 그다지 음식을 먹을만한 곳이 많이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밥을 먹을때나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 코스로 감자탕집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쏭군은 주로 한 가게만 단골로 이용하는 편입니다. 특별할 것 없는 이 감자탕집을 단골로 삼은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사장님의 인사성 덕분입니다. 사장님은 가게 입구에 서서 오는 손님 나가는 손님, 꼬마손님, 할아버지 손님 할 것 없이 90도로 허리숙여 큰 소리로 인사합니다. 그리고 밝은 미소로, 손님들의 신발과 커피, 아이스크림을 챙겨줍니다. 저는 사장님의 이런 친절함에 매료되어 그 가게를 단골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그 가게는 연일 손님들로 붐볐습니다. 개점 1년 만에 그 가게는 두 배 규모로 성장해 확장공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경기라서 장사가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작은 장사를 하든 큰 사업을 하든, 불경기라서 매출이 안나온다고 불평불만만 할 게 아니라 이런 작은것들에 충실했는지 자신의 사업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고객들은 결코 어려운 것을 원하는게 아닙니다. 작지만 꾸준한 것, 그리고 작지만 완벽하게 나를 챙겨주는 서비스를 원합니다. 고로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D